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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소설

장용학의 '요한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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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개요

《요한 시집》은 장용학이 1955년에 발표한 장편 소설로, 초기작 중 하나이다. 이 작품은 소설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제목에서 암시하듯, 시적 감수성과 철학적 사유가 강하게 담겨 있다. 작품은 한국전쟁의 비극적 현실과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전통적인 서사 중심 소설과는 달리, 난해하고 실험적인 서술 방식과 은유적인 문체가 특징이다.

 

이 작품은 전쟁 포로인 누혜가 철조망에 목을 매고 죽기까지의 생애를 그리고 있다. 서술에 있어서 사건보다도 등장 인물의 의식의 흐름에 더 많이 치중하면서, 현대에 있어서의 자유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제목에 '요한'이 들어간 것은 자유를 예언자 요한에게 비유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단편이면서도 작가 장용학의 작품 경향을 예시해 준 매우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의식의 서술 방식이라든가 자유의 본질을 해명하는 데 있어 프랑스 철학자 사르트르의 소설 <구토>의 영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 작품을 감상할 때는 작품의 알레고리적 특성에 주목하면서, 누혜의 자살을 통해 작가가 형상화하고자 한 주제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전체 줄거리

한 옛날에 바깥 세계를 동경한 토끼가 굴 밖으로 나왔다. 토끼는 그렇게 동경하던 바깥 세계를 보았지만, 그만 강렬한 태양 관선을 견디지 못하고 눈이 멀어 쓰러졌다. 토끼는 그 후 고향으로 돌아갈 길을 영영 잃어 버릴 것이 두려워, 죽을 때까지 그 자리를 뜨지 않았다. 그 토끼가 죽은 자리에 버섯이 자라났는데, 그 후예들은 그것을 '자유의 버섯'이라 불렀다.

 

'나(동호)'는 의용군으로 6.25  전쟁에 참전했따가 미군의 포로가 되어 포로 수용소에 수감된다. 그 곳에서 '나'는 누혜를 만나는데 그는 본래 인민군으로 공산주의의 신봉자였다. 그러나 지금은 세상에 환멸을 느끼고 푸른 하늘만 바라보면서 새가 되어 하늘로 날아가고 싶어했다. 그러던 어느 날 누혜가 철조망에 목을 매고 자살했다. 누혜는 사상과 계급, 인민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수용소 속에서의 비인간적인 살인 행위에 대해 견딜 수 없는 실존적 고통을 느꼈다. 그는 '인민의 반역자'라는 낙인이 찍혀 시신에서 눈알이 뽑혔다. '나'는 그의 눈알을 들고 서 있어야만 했다.

 

이후 반공 포로로 석방된 '나'는 누혜의 모친이 살고 있는 하꼬방으로 찾아간다. 병에 걸려 시체나 다름없는 누혜의 모친은 고양이가 물어다 주는 쥐를 먹으며 삶을 연명하고 있었다. 그런 노파의 모습에 침을 뱉고 싶은 생각이 '나'의 목젖을 울리고 순간 구토와 살의를 느껴 '나'는 노파를 살해한다. 노파는 실날 같은 목소리로 누혜를 부르며 앙상하게 죽는다. 

 

주요 주제

  1. 실존적 고뇌
    《요한 시집》은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고독과 삶의 의미를 탐구한다. 전쟁과 같은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인간이 느끼는 무의미함과 허무감, 그리고 그 속에서 생존하려는 몸부림을 생생하게 그린다.
  2. 전쟁과 인간성의 파괴
    작품은 한국전쟁이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인간성의 본질을 탐구한다. 전쟁이 개인과 공동체에 끼치는 잔혹한 영향을 통해 인간의 이중성과 폭력성을 드러낸다.
  3. 종교적 색채와 구원의 가능성
    제목에 등장하는 "요한"은 성경의 사도 요한을 연상시키며, 작품 전반에는 종교적 상징과 은유가 스며들어 있다. 이는 인간이 고통 속에서 구원을 찾으려는 시도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작품의 구조와 문체

  • 난해함과 철학적 서술
    《요한 시집》은 명확한 사건 중심의 서사가 아닌, 철학적 사유와 내면적 독백으로 가득 차 있어 독자에게 난해하게 느껴질 수 있다.

  • 시적 언어
    작품 속 문장은 서정적인 표현과 상징으로 가득 차 있다. 이는 제목에 포함된 "시집"이라는 단어와도 일맥상통한다.

문학적 의의

  1. 실존주의 문학의 대표작
    《요한 시집》은 한국 문학에서 실존주의 사조를 본격적으로 다룬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이는 당시 한국 문단에 새로운 철학적 담론을 소개하는 계기가 되었다.

  2. 전후 문학의 선구자적 역할
    한국전쟁 이후의 사회적, 정신적 혼란을 묘사함으로써 전후 문학의 흐름에 큰 영향을 미쳤다.

  3. 문학적 실험성
    장용학은 기존의 전통적 서사 방식을 탈피하고, 내면 탐구와 철학적 사유를 강조하며 한국 문학에 새로운 형식을 제시했다.

장용학의 '요한 시집'

 

<토끼 우화와 '자유'의 의미>

도무지 불행이라는 것으르 모르고 일곱 가지 고운 무지개 색으로 꾸며진 '굴' 속에서 살고 있던 토끼는 '밖으로  향했던 그의 마음이 내면으로 돌이켜'지자 비극이 시작된다. 내면이라는 자기 의식이 생겨났던 것이다.

 

동굴이 모태와 같은 안주의 상태를 의미한다면, 이는 자아 의식이 형성되기 이전의 유아 상내나 즉자적인 자아의 상태를 지칭한다. 의식을 통한 자아 인식에는 자기 부정성으로서의 탈자아 현상이 요청되는데, 이것이 작품에 서술된 '비극'이라는 요엉의 의미이다. 그러나 자유를 위해 구속과 타율로서의 동굴에서 탈출하고자 한 토끼가 홍두깨 같은 햇볕을 받자마자 눈이 멀았다는 우화는 개념 자체에 대한 맹목성을 암시해 주기도 한다. 이것은 인간이 맹목적으로 자유 관념을 추구할 때의 눈멂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물론 눈멂이란 현상을 심리학적으로 설명하자면 거세의 약화된 상징으로 간주된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모친에 대한 사랑과 부친에 대한 적대감이 성취될 때, 동시에 자신의 두 가지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바, 그것이 거세 콤플렉스와 오이디푸스의 눈멂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장용학에 의하면 자유라는 '개념'도 진정한 본질적 자유에 이르기 위한 과정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이러한 개념의 수단적 성격에 대한 자각은 인식 과정이 지니는 추상성에 대한 파악에서 온다. 자유의 개념적 인식에는 한계가 있다는 이 작품의 도입 부분의 우화는 이를 암시해 준다. 

 

<누혜는 왜 자살했을까?>

포로 수용소에서 누혜는 '누에'라고 불렀는데, 그 이유는 하늘만 쳐다보기를 좋아하는 누혜의 모습이 '나비'로 변신하여 드넓은 세상을 달아다니기 이전인, 자기의 세계에만 갇혀 있는 누에의 모습과 비슷하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누혜의 주체적인 결단에 의한 자살은 누에에서 나비로의 변신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는 누혜가 '철조망'에 목을 매달아 죽은 것과 연관하여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여기서 철조망은 토끼 우화에서의 '굴'과 같은 의미로 밝음과 어둠, 꿈과 현실, 열림과 갇힘의 경계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누혜의 자살은 동물적인 삶으로부터 탈출하여 '자유'를 향한 출구를 마련한 것으로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누혜의 죽음은 단순히 정망적인 죽음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의 권위와 자유 등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택한 죽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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