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진의 단편소설 <쥐잡기>는 1990년대 한국 사회의 이면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으로, 사회적 불평등, 가난, 도시 빈민의 삶을 중심으로 인간의 고통과 갈등을 다루고 있다. 김소진은 1980~90년대 한국 사회의 사회적 모순과 소외된 사람들의 일상을 생생히 묘사한 작가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은 도시 변두리의 서민 밀집 지역에서 쥐잡기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한 번의 해프닝을 소재로 삼고 있다. 작품 속에서 쥐는 '나(민홍)'와 '아버지'의 삶에 개입하여 그것을 흔들어 놓는 존재로 그려진다. 문제는 이러한 '쥐의 개입'이 일상적인 삶의 영역을 넘어 전쟁과 분단이라는 거대한 차원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소한 것을 통해 사회,역사적인 것을 언급하는 이러한 태도를 두고 침소봉대라고 비난할 수도 있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하면 전쟁 혹은 분단이라는 역사의 격변이 평범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또 어떻게 그들의 삶을 헤집어 놓는지에 대한 실랄한 문제 의식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1. 작품의 배경 및 시대적 상황
- 시대적 배경: 1980~90년대 한국의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 시기
- 사회적 문제:
- 도시 빈민층의 열악한 주거환경
- 사회적 불평등과 계층 간 갈등
- 경제적 어려움과 소외된 계층의 고통
이 시기 한국 사회는 산업화로 인한 경제 성장이 이루어졌지만, 빈부 격차와 도시 빈민의 어려움이 심화되었다. 소설은 이러한 사회적 배경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사회적 모순을 드러낸다.
🐭 2. 줄거리(내용 요약)
민홍은 전쟁 포로 출신의 아버지와 억척스러운 어머니를 두었다. 그들 가족은 도시 변두리의 한 지역에서 구멍가게를 꾸리며 살아간다. 그들 가족을 둘러싼 환경은 척박하기 그지없는데, 이것은 자본주의적이고 도시적인 삶의 표준에 도달하지 못한 온갖 인간 군상이 밀집한 동네가 그들의 삶의 터전인 것이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가게에 골칫거리가 하나 생겼는데 들여 놓은 물건을 먹어치우는 쥐가 그것이다. 아버지는 유달리 쥐를 잡는 데 집착한다. 그러나 아버지가 동원한 방법은 때마다 실패하고 그로 인해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온갖 시달림을 받는다. 어느 날 아버지는 또 한 번의 실패를 경험한 후 민홍과 함께 양념장을 두른 메밀묵을 먹다가 갑자기 자신의 과거에 대해 털어놓는다. 마음 한 켠에 무능한 아버지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있던 민홍은 그 이야기를 듣고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한다.
민홍은 대학생으로 시위에 참가했다가 화상을 당한 후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아간다. 어머니에게 이러한 민홍의 모습은 아버지의 또 다른 모습으로 받아들여지면서 두 사람은 구박에 시달린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가게에 다시 쥐가 나타난다. 문득 민홍은 쥐를 잡아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버지처럼 그 역시 쥐잡기에 실패하는데, 이때 문득 무언인가 자신을 옭아매던 어떤 것이 사라지는 느낌을 받는다.
🔍 3. 인물 분석
- 주인공(아버지/가장):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가족을 위해 애쓰는 인물. 쥐를 잡으며 현실의 고통과 마주한다.
- 어머니: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가족을 지탱하려는 인물로, 인내와 현실 감각을 보여준다.
- 동네 주민들: 공동체 안에서도 서로에 대한 불신과 갈등을 드러내며,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 4. 주요 주제와 상징
- 쥐의 상징성:
- 사회적 소외, 빈곤, 두려움의 상징
- 제거 대상이지만 쉽게 사라지지 않는 현실의 문제를 상징
- 쥐잡기 운동:
-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공동체의 노력이지만, 근본적 해결이 아닌 표면적 대응을 의미
- 국가 정책이나 사회적 시도의 무력함을 풍자
- 가족의 고통과 연대:
- 어려움 속에서도 버티는 가족의 모습이 따뜻하면서도 안타깝게 그려짐
✒️ 5. 작품의 의미와 작가의 의도
김소진은 빈곤과 소외의 문제를 ‘쥐’라는 소재를 통해 생생하게 묘사한다. 쥐를 잡는 행위는 단순한 위생 개선이 아닌, 가난이라는 사회적 문제와 맞서 싸우는 도시 빈민의 모습을 보여준다.
- 쥐 = 사회적 문제(가난, 소외)
- 쥐잡기 운동 = 일시적이고 표면적인 해결책
작가는 이를 통해 사회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려면 근본적인 변화와 공동체의 연대가 필요함을 시사한다.
* 아버지의 거대한 역사와 어머니의 사소한 일상이 만드는 변증법
김소진의 작품 속에서 형상화되고 있는 아버지는 왜소하고 어머니는 억척스러우며 이는 각각 나름의 역사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주인공은 아버지의 왜소함이나 어머니의 억척스러움 어느 한 편을 일방적으로 지지할 수 없는 것이다. 아버지가 무능하고 왜소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은 그가 역사라는 격랑에 휩쓸린 조난자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그 역사의 격량은 6.25전쟁이라는 것으로 구체화된다. 인민군으로 참전했다가 반공 포로가 된 아버지는 한국 현대사의 이면을 고스란히 상징한다. 인천 상륙 작전과 1.4 후퇴가 6.25전쟁의 모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6.25 전쟁은 이념과 무관한 양민의 희생과 이산이라는 사실을 아버지는 자신의 존재만으로 입증해 주고 있다.
반면 어머니는 전쟁 이후의 험난한 삶을 상징한다. 전쟁이라는 격동에 비추어 볼 때 먹고 살아가는 일상은 별다른 의미를 지니지 못하는 것으로 평가될 수도 있지만 그 곳을 헤쳐 가는 일상의 존재들에게는 그 또한 또 하나의 전쟁이라고 할 것이다.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실제 전투에서 생존하는 것 이상의 노력과 담력이 요구된다. 쥐에 홀린 아버지가 아무 생각 없이 선의 이쪽 저쪽을 넘나드는 것과 비교할 때 구멍가게를 꾸려 가면서 닥치는 상황에 대한 어머니의 판단은 훨씬 더 치밀하고 전술적인 것이다. 은정 아빠와 보살 할머니에 대한 어머니의 태도를 보자. 민홍이 처한 상황은 어떠한가. 간단히 말해 민홍은 양자의 사생아이다. 어느 한 쪽의 영향력도 민홍에게는 절대적일 수 없다. 왜냐 하면 그에게는 민홍 자신만의 또 다른 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배를 깔고 소설책 나부랭이를 뒤적이는 민홍의 모습이 어머니의 세계가 구성하는 층위의 맨 밑바닥을 보여 주는 것이라면 화염병을 들고 뛰어다니는 민홍의 모습은 아버지의 세계가 지닌 또 다른 모습인 것이다.
* 호칭이 주는 효과
서술자는 민홍의 아버지를 지칭할 때는 '아버지'라는 일반 명사를 사용하고 있으나 어머니를 지칭할 때는 '철원네'라는 고유 명사를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호칭의 변화는 수용 과정에서 미묘한 차이를 발생시킨다. 즉 아버지라는 일반 명사를 통해 호명되는 민홍의 부친은 독자와의 거리가 좁혀지는 반면, 철원네라는 고유 명사로 명명된 민홍의 모친은 상당한 거리감을 형성하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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