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현대소설

손창섭의 '잉여 인간'

728x90
반응형

손창섭의 소설 《잉여인간》(1958)은 1950년대 한국 문단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으로, 전후(戰後) 한국 사회의 혼란과 개인의 실존적 고뇌를 심도 있게 다룬 작품이다. 이 소설은 한국전쟁 이후 경제적, 사회적 기반을 잃고 방황하며 살아가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 소외와 실존적 위기를 탐구한다.


손창섭의 '잉여 인간'

 


 

1. 줄거리 요약

만기 치과 의원에는 원장인 서만기와 간호원 홍인숙 외에도, 날마다 출근하다시피하는 사람들이 있다. 비분강개파 채익준과 실의의 인간 천봉우가 바로 그들이다. 두 사람은 만기의 중학교 동창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언제나 만기보다도 먼저 나와 대합실에 앉아 있다. 어느날 남달리 정의감이 강한 비분강개파 채익준은 신문에서 가짜 약을 만들어 팔다 법망에 걸린 범죄단에 대한 기사를 읽다가 그만 흥분이 되자 이에 동조해 주지 않는 봉우에게 핏대를 올리며 나가 버린다. 봉우는 매사에 흥미가 없고, 늘 수면 부족을 느끼는 인물로, 그의 실의 상태는 6.25 전쟁을 치르고 나서 현저해진 것이다. 게다가 그의 아내는 여러 가지 불민한 소문을 퍼뜨리는 행실이 좋지 않은 여자였다.

 

그에 비해 만기는 이들과 달리 성실하고 능력있으며 기품있는 태도를 지닌 인물이다. 아내와도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있지만 돈을 못 벌어 봉우의 처가 소유한 병원 건물과 치료 기구를 이용하고 있다. 가끔 병원에 들어 이를 치료하고 가는 봉우의 아내는 만기에게 적극적으로 접근한다. 그럴 때마다 만기를 적절히 거절하느라 곤혹스러워 한다.

어느 날, 병원으로 익준의 아들이 아버지를 찾으러오고, 아이를 통해 만기는 익준이 집을 나간 것을 알게 된다. 또한 간ㅇ호원 미스 홍에게 봉우가 미스 홍을 사랑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고, 집에서는 그의 처제에게 자기를 사랑한다는 고백을 받고 마음이 더욱 착잡해진다. 봉우의 아내는 만기를 유혹하다가 거절당한 앙갚음으로 병원을 딴 사람에게 넘긴다. 이 무렵익준의 아내가 죽고, 가출 후 돌아오지 않는 익준을 대신하여 만기와 봉우가 봉우의 처에게 빌린 돈으로 장례를 치러 준다. 장례를 마친 날 얼굴이 까칠한 익준이 집에 돌아온다. 아이들이 매달려도 그는 장승처럼 서 있을 뿐이다. 

 

 

 

2. 주제 및 메시지

**《잉여인간》**은 주로 다음과 같은 주제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1. 전후 사회의 혼란
    한국전쟁 이후 황폐해진 사회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가 상실된 현실을 비판적으로 그립니다. 이 작품은 전쟁이 개인에게 미친 정신적·사회적 영향을 조명하며, 주인공의 방황과 무기력을 통해 시대적 아픔을 드러냅니다.
  2. 실존적 고뇌
    주인공은 자신의 존재 이유와 가치를 찾지 못하고, 삶의 무의미함에 괴로워합니다. 이는 실존주의 철학에서 말하는 ‘부조리’와 연관되며, 인간이 자기 존재를 어떻게 정의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을 던집니다.
  3. 인간 소외
    주인공은 가족, 친구, 연인 등과의 관계에서 소외를 겪으며, 인간 본연의 고독을 드러냅니다. 이는 현대사회의 익명성과 단절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3. 작품의 문학적 특징

  1. 간결하고 담담한 문체
    손창섭은 과장되지 않은 간결하고 차분한 문체로 주인공의 내면과 일상의 무기력을 표현한다. 이러한 문체는 주인공의 삶의 무의미함과 무력감을 독자가 직접 체감하도록 한다.
  2. 반영웅적 인물
    전통적인 영웅적 인물과는 반대로, 주인공은 결핍과 무력감으로 가득 찬 인물이다. 그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거나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기보다는 스스로의 존재를 의심하며 살아간다.
  3. 자전적 요소
    손창섭의 개인적 경험이 반영된 측면도 있다. 그 또한 한국전쟁 이후 작가로서의 삶과 사회적 정체성을 고민했던 바가 소설 속에 투영된 것으로 보인다.

4. 《잉여인간》의 의의

《잉여인간》은 단순한 개인의 방황을 다룬 소설이 아니라, 1950년대 한국 사회의 혼란과 전쟁의 상처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한국 문학사에서 전후 시대의 실존적 고뇌를 대표하는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공감할 수 있는 인간 소외와 삶의 무의미함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어 시대를 초월한 가치를 지닌다. 이 작품은 한국 문학의 전후사적 성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며, 사회와 개인의 관계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제공하는 중요한 문학적 성취로 여겨진다. 

 

 

* <사회와의 단절과 박제된 사랑>-천봉우

천봉우의 애정은 상대에게 가까이 다가가지도 그렇다고 상대의 존재를 무시하지도 못하는 일정한 거리에서의 자기 헤매임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는 보이지 않는 벽에 갇혀서 허상에 매달려 있는 형상이다. 이러한 그의 사랑은 정신적 상처에 뿌리를 박고 있다. 그는 피난 나갈 기회를 놓치고 3개월 동안에 서울에 숨어서 빨갱이와 공습에 대한 공포감 때문에 불안한 긴장 상태로 지내던 것이 고질화되고 전란 통에 양친과 형제까지 잃게 되면서 커다란 정신적 상처를 입게 된 것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그의 행동이 일면 수긍되기도 하지만, 그것은 봉우의 성격 형성의 한 원인이 될 뿐 그렇다고 해서 봉우의 생활 방식이 합리화되는 것은 아니다. 

 

*<생활에 실패한 무능력한 인물>-채익준

채익준은 아내의 장례가 끝나자 집으로 돌아온다. 비록 아이들의 고무신을 사들고 오지만 그것은 익준의 가련한 일상일 뿐 그가 생활인으로 사회와 맞닿을 수 있는 가능성은 없다. 매일 병원에 나와서 두 시간에 걸쳐 신문을 읽으며 광고까지 훑어 내려가지만 그것은 하나의 형식일 뿐이다. 가짜 약 제조업자를 극형시켜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거나 사회의 안녕을 지키기 위해 일명 'D.D.T. 정책'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모두 공허한 관념일 뿐이다. 그에게는 아무런 현실적인 힘도 의지도 없는 것이다. 돈을 꾸기 위해 아들을 데리고 병원에 왔지만 이야기도 꺼내지 못한 채 결국에는 빈손으로 아들을 돌려보내야 했던 것은 무능력의 표시이다. 그는 현실이 아니라 생각 속에서만 비분강개파에 그치고 마는 것이다. 

 

 

*<잉여인간>의 구조와 가족사적인 의미망

<잉여 인간>은 그 구조적인 측면에서 등장 인물의 관계가 가족사적인 의미망 속에서 포착된다. 이 갖족의 단위는 당시 전쟁 후에 맞게 된 새로운 질서에 대한 가족 단위의 특성을 선명하게 보여 준다. 즉 치과 의사인 서만기는 14명의 식구를 거느리고 처와 처제의 애정을 듬뿍 받고 살아가는 착실한 가장이다. 그리고 비분강개파 채익준은 아내와 아이를 돌볼 능력이 없는 인간으로, 아내의 죽음을 통해 그 가족의 내적 상황이 제시되고 있다. '수면 부족이 느껴지는 떠름한 얼굴'을 짓는 천봉우 역시 가족 간에 문제가 있는 인물이다.

 

이 세 인물이 각기 그 가족과 그것의 복합을 통해서 '잉여 인간'이라는 인간 울타리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 세 인물들의 가족이 엮는 구조는 이 작품을 실제로 범상한 일상적 의미의 생활 소설 유형에서 일탈하게 한다. 즉, 치과 의사인 서만기는 그의 아내와 처제의 사랑 사이에서 괴로워하고 있다. 그리고 봉우 처의 집요한 유혹에 놓여 있으며, 간호사 인숙의 봉사적인 사랑에 감사해 한다. 그리고 채익준의 등 뒤로는 아내가 생선 장사를 해서 가계를 이끌어 가다 결국 병들어 죽게 되며, 죽은 다음에야 아이들 고무신 하나를 들고 돌아오게 되는 비참한 현실이 부각되고 있다. 봉우 역시, 사랑병을 앓고 있으면서 자아 의지가 보이지 않게 스스로를 감추며 활동적인 아내와 불편한 관계를 유지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관계되는 가족 관계의 조합은 세 인물이 표상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내용을 보여 주고 있다.  

 

728x90
반응형

'현대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  (0) 2025.01.26
전상국의 '우상의 눈물'  (0) 2025.01.25
양귀자의 '원미동 시인'  (0) 2025.01.24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0) 2025.01.23
김유정의 '동백꽃'  (0) 2025.01.21
김동인의 '배따라기'  (2) 2025.01.20
박경리의 '불신시대'  (3) 2025.01.19
박완서의 '엄마의 말뚝'  (0) 2025.01.18